[신충우 파일 230]
요즘 지구온난화로 자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환경(環境)’과 ‘생태(生態)’를 혼동해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데 다른 개념이다. 환경은 인간이 만들어 가는 자연으로, 인간 중심적인 측면에서 자연을 보는 것이며 생태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으로 자연 중심적인 측면에서 자연을 보는 것이다. 전자는 인간이 주체이고 자연이 객체인 도구이지만 후자는 자연과 인간을 동등하게 보는 공존의 개념이다.
환경이라는 것은 어원적으로 인간을 중심에 놓고 주변으로써의 환경을 설정한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환경에 대한 우월주의가 암암리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여전히 자연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중요하고 자연은 부차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함의가 담겨 있다.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되 자연보다는 인간자신을 위한다는 것이다. 이를 인간중심주의 또는 인간제일주의, 우월주의적 시각에서의 환경윤리고 철학이다. 자연을 위하되 인간과 평등하게 보지 않는 것이 환경윤리의 기본철학이다. 현실적으로 인간을 위한 인간 이기주의가 스민 자연사랑을 환경윤리라고 하고 그 구체적 행동방안을 환경윤리규범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환경윤리는 구체적 실천윤리의 내용이 아니고 환경에 대한 인간철학이라고 보아야 한다.
생태윤리는 인간중심주의가 아닌 생태중심주의를 본질로 하는 것으로 환경윤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인간과 모든 생물은 절대 평등하다는 전제조건에서 출발한다. 자연을 위하는 것도 인간을 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를 위한 것으로 환경윤리와 그 목적이 크게 다르다. 여기에는 인간우월주의라든가 인간제일주의가 끼여들 여지가 없다. 모든 생명이 똑같이 평등하다는 절대이념에서 생명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자는 것으로 인간의 모든 문명을 거부할 수도 있는 혁명적인 사상이다. 생태윤리는 이같이 환경윤리와 다르다.
생태주의 중에서도 이런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는 것을 특별히 심층생태주의라고 한다. 생태주의는 성장제일문명을 배척하고 탈 근대적 문명을 지향한다. 주체와 객체가 분리된 것이 아닌 함께 공존하고 다양성을 존중한다. 경쟁이 만무하는 시장경제를 반대하고 함께하는 나눔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다.
생태철학은 불교의 ‘연기사상’ 혹은 ‘연기론’과 관련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연기론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분리돼 있는 것이 아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모두 관련돼 있다는 사상이다. 마치 고구마 뿌리에 알알이 고구마가 달려있는 처럼 말이다. 거리를 걸어가는 낯선 사람들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내가 이 땅 한국에 사는 데 있어 모두 어떤 영향이든 주고 받고 있다는 것이다. 생태철학도 마찬가지로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함께 하는 공존적 사고를 지향하는 것이다.
<한재>
'기본카테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2] 토함산 일출을 보면서 (0) | 2009.11.02 |
---|---|
[231] 동물의 무늬 (0) | 2009.10.30 |
[228] 세상 끝과의 조우 (0) | 2009.10.05 |
[227] 생태적 대자아 (0) | 2009.09.14 |
[226] 디지털시대의 스토리텔링 (0) | 2009.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