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충우파일 90]

한국의 대표적인 S/W 아래아 한글

신충우(u-Corea포럼 회장)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프트웨어는 워드프로세서 아래아 한글. 이찬진이1988년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 4학년때 개발한 것이다. 그는이를 기반으로 1990년 10월 9일(한글날) 국민기업 한글과컴퓨터를 설립했다. 줄여서 한컴이라고 부르는이 회사는 워드프로세서 아래아 한글 시리즈를 비롯해 사무용 종합 소프트웨어인 한컴오피스 2004, 국내 최초의 정보 검색엔진 심마니, 국내 커뮤니티 포털의 시조 네띠앙, 최초의 인터넷 채팅사이트 하늘나라 등 을 개발해 국내 굴지의 소프트웨어 개발회사로 자라잡았다.

한때 심각한 자금난에 몰려 1998년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2,000만 달러를 투자 받는 조건으로 한글 시리즈 개발을 포기해야 하는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1년여만에 재기, 위기를 극복했다. 이때 정부에서는 불법복제 소프트웨어를 단속하고 민간 사회단체에서는 정품 사용하기 캠페인을 벌여 한컴이 재기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종합 인터넷 서비스가 이 회사의사업 목표.

한글과컴퓨터는 2005년 상반기 창사 이래 최고 매출액 190억원을 달성했다. 영업이익은 49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 회사는 상반기 오피스 매출이 39억원으로 호조를 보인데다 리눅스 부문에서 지난해의 3배가 넘는 19억원의 매출을 달성해 이런 성과를 냈다고 자평했다.


"다양한 제휴 관계를 통해 아군을 늘려 나가고 긴밀한 협조 체제를 통해서 경쟁력을 키워 나가는 것, 이것이 우리의 경쟁 상대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싸우는 기본전략입니다."

한컴 창업주 이찬진이 컴퓨터를 처음으로 대하게 된 때는 대입 학력고사를 치르고 난후였다. 그가 부모에게 간청해 구입한 컴퓨터는 23만 5,000원짜리 애플 호환기종으로 하드디스크도 없는 8비트 PC였고 모니터는 중고 흑백 텔레비전으로 대신했다. 그는 국내에 PC가 없던 시절에도 컴퓨터 관련 잡지들을 찾아 읽었고 대학 2학년때 생긴 서울대 컴퓨터 연구회(SCSC)라는 서클에 가입했다. 1988년 우리나라 우편번호가 다섯 자리에서 여섯 자리로 바뀌어 수천개에 달하는 지역별 우편번호를 일일이 수정해야 하는 일이 생겼고 이에 정보통신부에서는 우편번호 자동변환 소프트웨어를 공모했는데 그는 서클 후배인 김형집, 이원식과 함께 이 공모전에 참여해 유일하게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라는 평가를 받으며 대상을 차지했다.

이 당시 국내에는 한글 워드프로세서로 삼보컴퓨터의 보석글과 금성의 하나워드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외국 프로그램을 한글화한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밖에도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만들어 내는 회사들이 더러 있었지만, 제각기 서로 다른 한글 코드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정한 시스템과 프린터상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1988년 여름 한글 2000이라는 프로그램이 나왔다. 이 프로그램은 모든 컴퓨터가 가지고 있는 그래픽 기능을 이용해 한글을 화면상에 그리는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에 별도의 한글 카드 없이 아무 기종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이찬진은 한글 2000 워드를 모델로 삼고 자신이 느낀 불만들을 보완하면서 삼보컴퓨터 보석글의 다양한 기능들을 접목시켜 역사적인 아래아 한글1.0을 만들어 냈다.

이찬진은한글문화원 한 귀퉁이의 4평짜리 방에임대로 사무실을마련하고 아래아 한글1.0을 팔아서 번 돈5,000 만원으로 회사를 차렸다. 이 회사의 설립에는 김형집(대학원생), 이원식. 이장우(대학생), 박흥호(국어교사), 정내권(프로그래머) 등이 참여했다. 이렇게 시작한 한글과컴퓨터는 1991년 10억의 매출액을 기록하며 IT업계의 무서운 아이들로 불리기 시작했다. 92년 7월에는 아래아 한글2.0을 출시했는데 만들어 내기가 무섭게 팔려나가 두 달 동안 3만본이 판매됐다. 아래아 한글2.0은 한글워드프로세서 사상 처음으로 한글 철자 검색 기능이 추가되었고 윤곽선 글꼴을 채택, 글자의 확대 및 축소가 자유롭고 매끈한 글씨를 얻을 수 있었다. 93년에는 매출액이 100억원을 넘게 됐으며 ?글의 등록사용자가 10만명을 넘게 됐다. 국내에서 단일 패키지로 10만 명이 넘는 등록 사용자를 보유하게 된 제품은 아래아 한글이 처음이다. 이 회사는 비록 국내시장이지만 전세계의 워드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보다 3배 이상의 매출을 유지했다. 이러한 실적은 전 세계적으로 자국 워드시장을 지켜나가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 정도라는 평가를 낳게 했다.

한글과컴퓨터의 경쟁상대는 마이크로소프트. 한컴은 1994년 10월 한글큰잔치에서 한컴비젼 2000을 선언하고 종합 소프트웨어회사으로의 지향함을 대외에 공표했다. 이찬진은 한두 가지 제품에서 마이크로소프트보다 우위를 점한다고 해서 진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판단을 하였고 장기적으로 정보통신, 응용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사람들의 일상생활이나 업무에 꼭 필요한 도구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으로 한컴비전 2000을 내걸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워드프로세서와 스프레드시트, 데이터베이스 등 기본적인 제품은 물론 소프트웨어가 들어가는 모든 분야에 걸쳐 라인업을 구축했다. 이런 제품들은 사용방법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한 가지 기능만 익히면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이용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데이터를 서로 공유하는 장점이 있어 워드프로세서 분야에서도 한컴을 위협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993년 윈도우3.1을 한글화한 한글 윈도우3.1에 윈도즈용 응용소프트웨어인 한글엑셀, 한글워드, 한글오피스 등을 한글화해 국내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이어 94년 7월 MS오피스4.0을 출시, 국내 통합스위트시장을 공략하였고 95년 10월 윈도즈95를 지원하는 오피스95를 내놓았다.

이에따라 한글과컴퓨터는 PC제조회사에 번들로 공급하던 윈도우즈용 통합 소프트웨어인 한아름1.0을 별도 패키지로 단장해 시판했다. 한컴이 아래아 한글로 고정된 기업 이미지에서 탈피해 종합 소프트웨어 회사로의 변신을 시도하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한글과컴퓨터는 윈도우즈 95시대를 맞이해 아래아 한글3.0b를 내놓았는데 HNC라이브러리라는 독자적인 입출력 체계를 통해 확장조합형 한글, 확장 한자, 다국어 지원, 초고속 인쇄 등을 실현하고 있어 영.한 윈도우즈 95는 물론 중국어, 일본어용 등 세계 각국어판 으로 나온 모든 윈도우즈 95에서 운용될 수 있게 했다. 윈도우즈 아래아 한글3.0b는 인터넷 사용자들을 위한 인터넷 문서(asp) 읽기?쓰기 기능, 한글 오피스 메뉴 추가기능도 포함 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컴은 1990년 5명으로 시작해 93년 103억원, 94년 151억원의 매출액을 달성하는 등 급성장을 하다 소프트웨어 복제성행, 마이크로소프트 파상공세에 외환위기까지 겹쳐 1998년 경영난에 봉착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협력처를 찾아다니던 이찬진은 마지막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찾아 아래아 한글사용자들을 보호하고 그 기능적 장점들을 MS워드에 수용하겠다는 조건으로 MS 제의를 수용한다. 한글과컴퓨터는 인터넷 기업으로서 새로운 벤처에 도전하게 할 참이었다. 이때 벤처기업가로 명성이 자자하던 이민화가 등장, 이에 반한 주장을 폈다. "우리 국민들이 다시 MS워드를 배울 경우 아래아 한글사용자의 재교육 비용에 3,000억원, 공공기관의 한글문서 교체비용으로 1,000억원, MS워드 구매비용으로 1,000억원 등 적어도 5,000억원 이상의 국가적 손실이 발생하지만 아래아 한글을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비용은 50억원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그 주장이다.

이런 주장이 위력을 발휘했는지, 한달 만에 이민화는 이찬진으로부터 항복문서를 받아낸다. 아래아 한글지키기운동본부가 모금한 이른바 국민주 20억원과 이민화가 경영하는 메디슨 명의의 50억원 등 70억원의 출자를 받아들이되, MS와의 투자유치협상은 중단하며 이찬진 자신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내용이었다. 이 때 국민들은 아래아 한글의 수난을 민족의 수난과 동일시 생각했다.

항복문서를 받아낼 당시 한글과컴퓨터 주가는 4,800원대, 이로부터 1년 후 주가는 무려 120배나 뛰어 오른다. 물론 제1대 주주는 메디슨으로 바뀐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주식시장에 발표되는 소재가 아래아 한글과는 무관한 인터넷 비즈니스에 관한 것들이고 후속 버전을 잇지 못한 아래아 한글의 시장점유율은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한글과컴퓨터가 주식시장에서 인터넷기업으로 분류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아래아 한글워디안이라는 후속 버전이 출시된 것은 아래아 한글지키기운동본부가 약속한 날짜로부터 2년이 훨씬 지난 뒤다. 하지만 이 버전은 성능은 차치하더라도 시장주도권을 이미 MS에 내준 뒤 출시된 뒷북거리라는 평가를 받고 만다. 한해 판매량이 100만개를 넘었고 판매 첫 한달 동안에만 20만∼30만개에 이르던 아래아 한글이었지만 아래아 한글워디안의 첫 한달 판매량은 고작 6만여개에 그쳤다.

바로 이때 이민화는 메디슨 소유의 한글과컴퓨터 지분을 싱가포르 기업에 매각한다. 그 결과 한글과컴퓨터의 지분구조는 홍콩계와 싱가포르계가 각각 1, 2대 주주가 되고 메디슨은 그 뒷자리로 내려앉았다. 국민기업한글과컴퓨터의 경영권이 사실상 외국계에 넘어가는 상황이 재현된 것이다. 아래아 한글과 관련된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됐다. MS처럼 MS워드에 기능 일부를 수용해 주고 사용자를 보호해 주겠다는 아래아 한글에 대한 조건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시장점유율 수위도 무너졌고 한글과컴퓨터는 인터넷기업이 됐다. 다만 메디슨이 약 10배의 지분매각 차익을 올렸을 뿐이다.

1998년 8월 한컴 매각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장 이찬진이 물러나자 공개모집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통해 전하진이 사장으로 영입됐다. 전하진은 대표이사 취임 이후 무리한 인터넷사업 추진 등 중요한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꾸준한 매출증가를 이뤄 회사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러나 2000년부터 국내외적으로 IT산업의 불황이 깊어지면서 한글과컴퓨터는 또 다시 경영난에 봉착했다. 국민주 모집으로 위기를 넘긴 한컴은 전하진이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공격적으로 전환, 사업을 추진했지만 닷컴기업의 몰락으로 인터넷 사업이 부진, 적자가 누적됐다. 1998년 162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후 99년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의 계기로 105억원의 흑자를 냈지만 다시 2000년 순이익이 마이너스 203억원으로 급락한 후 2001년 상반기에만 102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전하진은 2001년 9월 26일 전격 사임했다.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창업주 이찬진에 이어 구원투수로 등판한 전하진마저 낙마하고 만 것이다. 그 후 상무 최승돈이 임시 대표이사를 맡았다가 현재는 백종진이 한컴의 선장을 맡아 다시 흑자를 내는 등 순항에 돌입했다.

<2005/10/18>



Posted by 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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