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충우파일 -85]

신충우(u-Corea포럼 회장)

인류 역사상 최고 발명품의 하나로 꼽히는 컴퓨터는 현대인의 생활 곳곳에 파고들어 사회 및 산업구조는 물론, 인간의 의식세계까지 혁명적으로 바꿔 놓고 있다.

컴퓨터가 지구상에 처음으로 선을 보인 것은 50년 전인 1946년 2월 14일,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 공학부의 존 모클리와 프레스터 에커가 30톤 무게의 '에니악(ENIAC)이라는 아날로그 컴퓨터를 만들어 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컴퓨터는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핵심적인 필수품으로 떠 올랐다. 웬만한 기업활동은 컴퓨터없이 생각할 수 없고 개인생활도 컴퓨터가 없으면 불편하기 짝이 없을 정도다. 1996년 1월 현재 전 세계에 보급된 컴퓨터는 1억9,200만대로 PC(1억8,657만대)가 97%를 차지한다.

정보시대 총아 PC는 미시사주간지 <타임>에 의해 1982년 창간이래 처음으로「올해의 인물」로 선정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인물(人物)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사람을 지칭한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잡지는 1927년 이후 그해 가장 영향을 미친 인물을「올해의 인물」을 선정해 왔으나 1982년의 경우 베긴 이스라엘 수상, 대처 영국 수상, 그리고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ET(외계인) 등을 모두 제치고「올해의 인물」로 문명의 이기(利器)인 PC를 뽑은 것이다. 이것은 비록 PC가 사람은 아니지만 도래하는 정보화사회의 핵심도구로써 사람 이상으로 그 역할이 지대하게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통신과 함께 정보화사회를 주도하는 국내 컴퓨터산업은 기술발달 및 내수와 수출추이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며 성장해 왔다. 우리나라 컴퓨터산업의 역사는 민족사적 입장에서 보면 태동기→국산화 시도기→산업화기→해외수출기→수입개방기→수요침체기→대량수요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태동기는 대부분 1960년대로 본다. 우리나라 컴퓨터 정책의 역사는 1967년부터 시작된 '과학기술진흥 5개년계획'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이 계획에 따라 이해 1월 16일 법률 제1864호로??과학기술진흥법??이 제정되고 1969년 과학기술연구소가 설립됐다. 이들 조치는 정부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관심을 표명한 최초의 컴퓨터에 대한 정책의지이다.

이 과학기술진흥법에는 제10조 2항에 컴퓨터에 대한 정책의지가 개국 이래 최초로 담겨졌다.


??과학기술처 장관은 다음 각 호의 사항에 관한 계획과 시책을 수립한다. 1)과학기술 정보기관 육성에 관한 사항. 2)과학기술 정보의 유통체제 확립에 관한 사항. 3)전자계산조직(컴퓨터를 말함)의 도입, 이용기술의 개발, 정보처리 요원의 양성에 관한 사항. 4)기타 정보기술의 개발과 정보산업의 육성에 관한 사항.??


이같은 정책의지는 컴퓨터 도입과 활용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국내에 전혀 인식돼 있지 않은 컴퓨터를 진흥법의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이를 근거로 같은 해 IBM1401과 FACOM222 등의 컴퓨터가 도입된다. IBM1401은 내무부 조사통계국(통계청 조사통계국 전신)이 간이 인구센서스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도입했으며, FACOM222는 한국생산성본부가 컴퓨터산업의 기반조성에 필요한 기초 작업을 수행키 위해 도입했다. 또한 1969년에는 과학기술연구소 설립과 함께 시스템공학연구의 전신인 전자계산실이 개설됐다. 컴퓨터 기술계의??대부??로 불리는 성기수(成琦秀)박사가 이때부터 1995년까지 26년간 이 조직을 이끌었다.

태동기에는 현재 국내 대형 컴퓨터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IBM, 후지쓰, 유니시스, CDC 등이 국내에 지사를 설립했다. 이때 컴퓨터에 대한 인식도는 전무할 정도로 낮았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컴퓨터에 대한 용어 자체도 알아듣지 못했으며 일부 안다는 사람들도??전자계산기??의 개념으로 밖에 파악하지 못했다.

이같이 태동기의 우리 컴퓨터 역사는 개발의 역사, 생산의 역사가 아닌 '도입의 역사'로 시작된 셈이다. 기술이 낙후된 후진국으로서 겪어야 하는 아픔이었지만 도입의 주체가 되어 컴퓨터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전산요원을 양성하고 다소나마 기술을 축척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국산화 시도기는 1970년대, 현재 국산컴퓨터의 효시로는 70년 4월 KAIST(한국과학기술원)가 미국 CTE의 후원으로 개발한??세종1호기??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도 8년이나 앞서 국내에서 최초로 컴퓨터가 만들어진 사실이 있었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1962년 8월, 당시 한양대 교수로 재직중이던 이만영(李晩榮)박사는 진공관을 조립해 아날로그 방식인 제 1호기를 개조, 대형전자계산기(제2호)를 만들었다. 이 교수는 1963년 3월에 1호기를 개조, 대형전자계산기(제2호)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1963년 11월 화재로 소실됐다. 현재 한양대 박물관에는 화재 후인 1963년 12월~1964년 5월에 만들어진 3호기가 보존되어 있다. 이들 컴퓨터는 비록 이용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상품화되지는 못했지만 국내 최초의 컴퓨터라는 데 그 의의가 매우 크다.

한편, 세종 1호기에 이어 1976년 6월 오리콤(두산정보통신의 전신)이 미국 DEC의 PDP계열의 컴퓨터를 들여와 주문자 생산으로??ORICOM??이란 기종을 생산했다. 1977년 6월에는 삼성과 일본NEC가 삼성전관을 합작으로 설립하고 NEC의 소형 컴퓨터를 국산화했다. 국산화 시도기에는 외국 업체의 국내 진출이 크게 늘어났다. DEC, PRIME, DG, WANG, HP, NEC 등이 국내에 대리점을 설치하고 시장 확보에 나섰다.

국산화 시도기를 거쳐 온 국내 컴퓨터 산업은 1980년대 초, 8비트 교육용 컴퓨터 생산을 계기로??산업??으로서의 면목을 갖추게 되고, 개인용 컴퓨터(PC)라는 말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사용됐다. 우리나라의 컴퓨터 산업은 이때부터 대량생산이 이루어졌다. 정부가 1983년 5개 PC업체로 부터 업체 당 1,000대씩 PC를 납품받아 각급 기관 및 학교에 보급한 것이 그 기폭제가 됐다. 이 해는 정부가 지정했던 '정보산업의 해'였다.

과기처는 1982년 한국전자기술연구소(한국전자통신연구소 전신)에 용역을 주어 8비트 PC의 기본 사양을 정하고 5개 납품업체를 선정했다. 당시 교육용 PC납품업체 선정에는 14개 업체가 참여해 기준에 도달한 5개 업체가 선정됐다. 그 업체는 금성사(LG전자 전신, FC-100)를 비롯, 동양나이론(HYCOM-8) 삼보컴퓨터(TRIGEM-30) 삼성전자(SPC-1100) 한국상역(한국컴퓨터 전신 SPORTRIGT-1) 등 .

그러나 8비트 PC는 1983년부터 1984년 상반기까지 반짝 경기를 보이다 1984년 하반기부터 덤핑 입찰, 소프트웨어 공급 부족, 기능 미흡, 그리고 컴퓨터에 대한 인식 부족 등으로 침체에 빠졌다. 그 후 1987년 한 때 학생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수요 증가를 보이다 자취를 감췄다.

1996년 2월 5일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한국컴퓨터기자클럽(KCRC)도??정보산업의 길잡이??로의 역할을 자청하며 이 시기(1985년 4월 21일)에 창립됐다.

8비트 컴퓨터란 컴퓨터가 작업을 수행할 때 8비트를 한 단위로 정보를 처리한다는 뜻이다. 즉 컴퓨터를 구성하는 중앙처리장치(CPU)가 8비트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이다. 비트는 0과 1이라는 2진 숫자의 준말로 정보를 처리하는 기본 단위. 현대의 컴퓨터는 비트로 정보를 처리하는 디지털 방식을 모두 채택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와 대비되는 아날로그방식이었다. 연속되는 8개의 비트는 바이트라 부른다.

8비트로 출발한 PC는 그 다음 16비트 PC로 이어진다. 16비트 PC는 1984년 하반기부터 8비트 PC의 보급이 부진해지면서 1985년부터 개발보급경쟁이 일기 시작했다. 이때 대형 컴퓨터를 국내에 공급해 온 IBM이 소형 컴퓨터 분야에도 진출하기 위해 IBM/PC5550을 들여와 팔려다 정부와 업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조립생산으로 선회했다. 한국IBM은 국내에 진출한 후 이 때 가장 비난을 샀다.

국내 컴퓨터 업계는 16비트 업무용 PC의 개발생산을 시작하는 단계로 IBM/PC5550의 국내 상륙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 16비트 PC 생산에는 20여개 업체가 참여했다. 16비트 PC도 8비트 때와 같이 정부 주도로 수요 붐 조성이 시도됐다. 내무부 주관으로 행정전산망 구축계획과 연계,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전국의 주민등록 관리업무를 전산화하기 위해 16비트 PC업체를 대상으로 납품기종을 선정했다. 선정된 기종은 GMC-6020(금성사) PC-24(금성반도체) PRO-2000(대우통신) PC-16000(동양나이론) OP-COM XT(동양정밀) TG-88(삼보컴퓨터) SPC3000(삼성전자) TS-2605(텔레비디오) 등으로 8개 업체의 PC. 이들 기종은 행정전산망을 비롯해 금융망 교육연구망 등 국가기간 전산망 사업을 추진하는 법적 근거인 「전산망 보급 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의원입법으로 제정됐다. 정선호(鄭善昊?민정당 의원) 오 명(吳明?체신부 차관)씨가 그 주역. 한국전산원은 이 법에 따라 설립됐다.

주민등록 관리 전산용으로 보급된 16비트 PC는 4,209대였으나 19834년 정부 주도의 컴퓨터 수요 붐 조성 때와 같이 일반 수요로 연결되지 못했다. 그러나 CRT(음극선관)터미널 모니터 등 주변기기의 수출에 머물러 있던 국내 컴퓨터 산업은 1986년이??수출의 원년??으로 기록될 정도로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수출대수는 25만대. 컴퓨터 수출은 해외에서 크게 각광받던 IBMPC/XT AT호환기종이 주종을 이루었으며 대부분 OEM(주문생산)으로 수출됐다. 그 주역은 대우통신, 삼보컴퓨터, 삼성전자, 현대전자 등이 담당했다. 수출호조는 내수 경기의 저조로 침체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컴퓨터업체들에 활력소가 됐다가. AT기종은 1987~88년 시장을 형성했다. 1987년 7월에는 외산 PC의 수입이 개방됐다.

한편 한국정보산업연합회(1983년)과 함께 컴퓨터 분야의 3대 단체로 불리는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1988년)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1987년)가 이 시기에 창립되기도 했다.

8비트 애플PC와 16비트 IBMPC/XT AT 시대를 거쳐 온 국내 컴퓨터 산업은 1989년부터 32비트 시대로 접어든다. 32비트 PC를 채택하고 있는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따라 일반적으로 모토로라(MC)6820계열, 인텔(I)80386계열, 그리고 기타 계열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I80386계열의 컴퓨터가 32비트 PC로 통칭됐다.

CPU(중앙처리장치)로 채용하는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따라 기종이 구분되는 PC는 칩의 기술변천에 따라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1980년대 초반 국내에 컴퓨터 시장을 생성한 PC에는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채용됐다. 미 애플이 개발한 8비트 PC는 전 세계 컴퓨터 업계에??애플 신화??를 창조할 정도로 각광을 받았다. 이 기종에 채택된 마이크로프로세서는 M6502와 Z80. 그 후에 출현한 MSX기종도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채용됐다.

8비트 PC에서 애플이 각광을 받은 반면, 16비트 PC에서는 IBM이 그 후광을 이어 받았다. 16비트 PC는 IBM이 인텔에서 개발한 16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채용, PC산업에 본격 참여함으로서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업계의 스탠더드로 인정받을 정도로 시장을 석권한 IBM기종은 XT→XT터보→AT 등으로 발전해 왔다. 이들 기종에는 XT에 I8088, XT터보에 I8088II, AT에 I80286 등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채용됐다.

AT에 이어 등장한 것이 32비트 PC. I80386 32비트 PC는 채택하고 있는 운영체제에 따라 386기종과 PS/2기종으로 구분됐다. MS-DOS를 채택한 386PC는 1986년 9월 미 컴팩컴퓨터가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이 때 이 회사가 내놓은 제품은??데스크프로-386??. 이에 따라 16비트 IBM/PC 호환 기종 생산업체였던 컴팩은 IBM을 제치고 32비트 시장에 우뚝서게 됐다. IBM의 32비트 컴퓨터 PS/2는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많은 고객을 확보했으나 국내에서 수요가 크게 일지 않았다.

1995년부터 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 노트북 PC는 AT와 386시대의 중간인 1988~89년에 등장, 외근사원과 기자들 사이에 애용되다 대학생 등 일반인으로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이에 앞서 랩탑 PC도 등장했다 바로 자취를 감췄다. 1996년 8월 현재 노트북 PC는 PC수요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32비트 PC는 이어 1990년 486시대로 넘어간다. 여기에 채택된 마이크로프로세서는 I80486. OEM수출에 의존하던 국내 컴퓨터산업은 486시대에 돌입하며 수출이 저조해져 경기침체를 면치 못한다.

소형 및 개인용컴퓨터 수출은 1989년 9억7,000만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후 매년 감소세를 거듭, 1990년 6억3,000만달러, 1993년 3억8,000만달러, 1994년 2억9,000만달러 등으로 줄어든 데 이어 1995년에는 2억500만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같이 PC수출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컴퓨터 업체들이 그동안 신기술 개발은 등한시한 채 조립기술을 도입, OEM수출에 의존하다 인건비 상승 등으로 주문이 끊겨 수출물량이 날로 줄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PC사용자들이 일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PC통신은 1988년부터 데이콤과 천리안이 상용서비스에 들어갔으나 1992년부터 한국 PC통신의 하이텔이 상용서비스에 들어가면서 이용자가 늘기 시작했다. 이들과 함께 국내 4대 PC통신인 나우콤의 나우누리(1994년), 삼성데이터시스템의 유니텔(1996년 1월)이 설립, 서비스에 들어갔다. 1996년 8월 현재 PC통신 이용자는 285만명으로 추산된다. 유료가입자는 이 중 140만명이다.

요즘 각광받고 있는 펜티엄 PC는 486에 이어 1993년부터 등장한 것이다. 이 PC에는 I80586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채용됐는데 그 이름이 펜티엄으로 지어져 다른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일명??586PC??로 불리는 펜티엄 PC는 처리속도 경쟁을 벌이며 연속 3년 간 장수를 누리고 있다. 이 때 IBM이 애플, 모토로라와 함께 펜티엄PC에 대적하기 위해??파워PC칩??을 개발, 국내에서도 일부 업체가 채용, 제품을 내놓았으나 시장을 창출하지 못했다.

펜티엄PC와 함께 멀티미디어시대가 도래, PC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1995년 말 현재, 국내에는 누계로 600만대의 PC가 보급돼 있는데 1996년에만 200만대가 보급될 예정이다(1996년 180만대 판매). 문자와 함께 영상 및 음성을 제공하는 멀티미디어시대를 맞아 컴퓨터에는 CD롬드라이브와 스피커 마이크가 부착되고, 플로피디스켓 대신 CD롬타이틀이 저장매체로 등장하게 됐다. 현재 CD롬타이틀 개발 공급업체는 200여개에 이른다. 이에 따라 기능향상용 멀티키트도 등장했다. 중고시장과 유통전문업체도 이 시기부터 생겨났다.

386, 486, 펜티엄칩 등은 모두 32비트 PC이지만 운영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MS-DOS(16비트운영체제)를 써왔다. 그러나 1995년 M/S가 MS-DOS기능을 수용한 윈도95를 출시, 하드웨어와 함께 소프트웨어도 32비트시대에 돌입했다. 이에 앞서 나온 IBM의 OS/2워프, 애플의 매킨토시7 등도 32비트 운영체제이다.

펜티엄프로칩(I80686)을 채용한 32비트 컴퓨터도 최근 등장, 시장을 형성해 가고 있다. 미 인텔이 1995년 11월 펜티엄칩을 대체하기 위해 내놓은 펜티엄프로는 윈도NT 유닉스 OS/2 등 32비트 운영체제에 맞춰 설계된 차세대칩으로 기존의 펜티엄 133MHz보다 처리속도가 2배 이상 빠르다. 명령을 입력한 순서대로 실행시키는 펜티엄과 달리 펜티엄프로는 여러가지 명령을 동시에 실행시켜 다중처리에도 뛰어나다. 1996년 8월 현재 나와 있는 모델은 150, 160, 180, 200MHz 등 4개이다.

현재 PC생산 분야에서는 삼성전자와 삼보컴퓨터가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으며, LG전자, 현대전자, 대우통신, 큐닉스컴퓨터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컴팩, 에이서, HP, IBM, 팬텍, 뉴텍 등 외국 PC도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수출 분야에선 대우통신의 활약상이 돋보였다. 1986년 국내 처음으로 20만대의 PC를 수출, 박성규(朴成圭)사장이 한국 컴퓨터기자클럽으로 부터??올해의 인물상??을 수상했다. 초기에 우후죽순격으로 PC사업에 참여했던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에 밀려 삼보컴퓨터와 큐닉스컴퓨터 외에는 대부분 포기하거나 중도하차했다. 대기업인 동양정밀도 자취를 감췄다.

소프트웨어분야는 한글과 컴퓨터 사장 이찬진(李澯振)씨가 1989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4학년에 재학 중 개발한 MS-DOS용 워드프로세서??ㅎ.ㄴ(아래아 한)글??이 한글 윈도 95가 나오기 전까지 국내 워드프로세서분야를 독점해 왔다. 이씨가 한컴사를 설립한 것은 1990년 10월. 그러나 한컴은 소프트웨어분야에 새롭게 등장한 그룹웨어나 윈도95에 제때 대처하지 못해 핸디소프트 등 후발업체에 밀리고 있다.

국내에 정보화가 진척되면서 주관부처의 역할이 강조돼 과기처, 상공부, 체신부 등으로 분산됐던 관련업무가 1995년 체신부로 통합되고 부처 이름도 정보통신부로 바뀌었다. 1986년 제정된「전산망 보급 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로 과기처, 상공부를 따돌리고 정보산업분야의 주도 부처로 부상한 체신부는 이에 다라 명실상부한 주무부처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또한 국가기간전산망사업과 관련, 1988년 국산 중형 컴퓨터(타이컴I)도 개발돼 III까지 나와 있으며 범용컴퓨터의 13%(약 1,000대)를 점유하고 있다. 이의 생산에는 삼성, LG, 현대, 대우가 참여하고 있다.

국내 컴퓨터산업-기술정책은 5~6공 시절 육사출신인 오 명(吳 明?체신부장차관) 홍성원(洪性源?청와대경제비서관) 정선호(鄭善昊?민정당의원) 김정덕(金定德?전자기술연구소장)씨와 이원웅(李元雄?과기처전자전기연구조정관) 경상현(景商鉉?전자통신연구소장) 김필규(金必圭?청와대경제비서관)씨 등에 의해 주도되다 정보통신부 신설 전후부터 정홍식(鄭弘植?정통부정책실장) 이철수(李哲洙?한국전산원장) 방석현(房錫炫?통신개발연구원장) 양승택(梁承澤?전자통신연구소장) 김문현(金文鉉?시스템공학센터소장)씨 등이 신진세력으로 등장, 이끌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보의 설립(1980년)에 참여했던 인물군이 주목된다. 이윤기(李潤基?사장), 권순덕(權純德?기술이사), 김영식(金榮植?PC영업이사), 이정희(李定熙?주변기기영업이사), 김우영(金又永?수출이사)씨 등은 1970년대 후반 오리콤의 조립생산 및 영업에 참여했던 인사들로 중소기업으로 출발한 삼보가 PC업계의 강자로 부상하는데 실질적인 주역 역할을 했다. 삼보는 현재 18개 자회사를 둔 컴퓨터 그룹으로 성장했다. 이들이 삼보를 떠난 것은 1980년대 후반. 이윤기사장과 김영식이사는 엘렉스컴퓨터를 설립, 회장과 사장으로, 김우영 이사는 그 자회사인 하이퍼테크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권순덕 이사는 한맥소프트웨어를 설립했다. 이정희 이사는 삼보에 남아 자회사인 삼보정보시스템사장을 맡고 있다. 이들이 떠난 후 사주인 이용태(李龍兌) 회장은 친인척으로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1995년 1,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엘렉스는 곧 주식시장에 상장된다. 주력기종은 전문가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매킨토시. 1996년 현재 상장된 컴퓨터 전문업체로는 삼보, 현대컴퓨터, 청호컴퓨터, 태일정밀 등이 있다.

한편 1990년대 초반, 중앙집중식에서 클라이언트/서버로 바뀌었던 컴퓨터 환경이 최근 인터넷이 등장, 네트워크 중심(NCC)으로 변하면서 지금까지 세계 PC시장을 지배해 온 인텔(칩)과 마이크로소프트(운영체제)가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 썬 마이크로시스템, 오라클 등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이들 간에 벌어지고 있는 산업전쟁의 결과가 앞으로 세계 정보산업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1996년 현재 인터넷 이용자는 전 세계적으로 4,500만 명, 2010년에는 10억 명이 인터넷을 포함, 컴퓨터통신을 이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NCC시대의 도래로 서버의 고기능화가 요구돼 침체국면에 빠졌던 대형 컴퓨터업체들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는 국내에서 갖은 횡포를 일삼고 고객에 대한 지원 미흡으로 비난을 사고 있다. 이들은 1995년 국내에서 인텔이 2,400억원, 마이크로소프트가 5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1995년 하반기부터 일기 시작한 인터넷은 국내 컴퓨터분야에도 새로운 변수로 등장, 업계의 판도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기업은 물론 병원, 대학, 일반인들 까지도 인터넷에 홈페이지 개설이 한창이다. 1996년 현재 개설된 홈페이지는 2,000여개이며, 인터넷 이용자는 약 30만 명.

국내 PC업체들은 현재 내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3~4년 후면 포화상태에 달해 지금부터 수출시장을 개척해 놓지 않으면 또다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199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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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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