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충우 IT칼럼-22]

인터넷에 담겨 있는思想은

-IT 사상연구가-


인터넷에 담겨 있는사상은 무엇인가?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가 일제시대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채용했던 아나키즘(Anarchism)이 인터넷(Internet)시대를 맞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단재와 인터넷은 표면적으로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과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일맥상통한 사상적 연관을 맺고 있다. 단재가 채용했던 아나키즘이 바로 오늘날 문명의 이기로 등장한 인터넷에 담겨있는 사상적 배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無政府主義)로 “조직화된 정치적 계급투쟁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적 조직·규율·귄위를 거부하고 국가기관의 강제수단을 철폐함으로써 자유와 평등, 정의, 형제애를 실행함하고자 하는 유토피아적 이데올르기 및 운동으로서, 국가나 정부는 본래가 해롭고 사악한 것이며 인간은 국가나 정부 없이도 올바르고 조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즉 모든 정치조직·권력·사회적 권위를 부정하는 사상 및 운동이다. 권력 또는 정부나 통치의 부재(不在)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an archos’에서 유래한다. 근대에 와서 처음으로 국가가 없는 사회란 뜻으로 이 용어를 사용한 사람은 루이 아르망 드 라옹탕으로 인디언의 생활을 기술한 그의 저서 (1703년)에 나타난다. 무정부주의는 국가와 법 또는 감옥·사제(司祭) ·재산 등이 없는 사회를 지칭한 것인데, 요즈음 일상적으로 혼란 ·무질서 등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민족주의자이자, 역사학자요, 독립운동가였던 단재(1880∼1936년)의 사회사상은 일생에 걸쳐 3단계로 변한다. 즉 시민적 민족주의, 무정부적 방법을 포용한 혁명적 민족주의, 그 다음 무정부주의가 그것으로 2∼3단계에 걸쳐 무정부주의가 채용됐다.

이 중에서 단재사상의 첫째 시기인 시민적 민족주의 시기는 단재가 1898년 만민공동회의 영향을 받아 주자학도로부터 개화자강파로 전환한 이 후부터 3·1운동 직후인 1922년까지의 기간이다.

단재의 민족주의는 민족의 실체를 국가체제나 주권국가가 아닌 종족적, 인종적 실체로 파악 했다. 국권을 상실한 상황에서 ‘단일민족’, ‘단군의 자손’이란 개념은 민족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역사가의 유일한 선택이었다.

이 시기에 단재는 1910년까지 전 국민에게 영향력이 큰 애국계몽사상가의 한 사람으로, 그 후부터 1922년까지는 열렬한 전투적 민족주의 독립운동가의 한 사람으로 그의 민족주의 사상과 운동을 전개했다.

단재는 1923년 의열단의 요청을 받고 작성한 ‘조선혁명선언’을 계기로 무정부주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선언에는 목적과 내용에 혁명적 민족주의를 담고 운동방법만 주로 무정부주의를 수용했다.

단재사상의 둘째 시기는 1923년부터 1924년까지로 짧은 기간이다. 이 시기에는 혁명적 민족주의에 무정부주의를 포용했다. 단재는 이미 민족주의를 진보적 사상으로 이해하고 1908년 발표한 <독사신론>에서 스스로 민족주의자임을 자부했다. 단재의 민족주의는 민족 자주독립사상과 민족국가 자결주의로 요약된다. 이 시기에 발표한 것이 민족사학의 초석인 <조선상고사>이다.

독립운동을 하던 중 ‘독립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던 단재는 이 생각을 우리 역사에 바로 대입시켜 소위 ‘민족주의 사학’을 정립시킨 장본인이다. 민중과 민족을 역사에 전면에 내세운 단재는‘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와의 투쟁’이라는 명제를 내세웠다.

단재사상의 셋째 시기는 1925년부터 1936년 중국 대련 여순감옥에서 순국하기까지 기간으로, 애국계몽운동을 통해 민족운동에 투신한 단재는 결국 무정부주의 독립운동가로 생을 마친다.

단재가 정식으로 무정부주의자가 된 것은 1927년 무정부주의 동맹에 가입, <동방>이란 잡지를 간행한 때부터이다. 이 후 그는 1928년 조선인 무정부주의들의 북경회의 동방연맹대회에 참가, 결의문을 작성했다.

“우리의 세계 무산대중, 더욱 우리 동방 각 식민지 무산민중의 혈(血) 육(肉) 골(骨)을 빨고 짜고 씹고 깨물어 먹어 온 자본주의 강도제국 야수꾼들은 지금 그 창자가 꿰지려 한다. 배가 터지려 한다.”로 시작되는 글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이 결의문에서는 5년 앞서 발표한 ‘조선혁명선언’에서의 민중을 무산대중 또는 무산민중으로 표현한 점이 주목된다. 그는 이 대회에서 결의된 조선독립운동 선전기관의 설립과 일본인 건축물 파괴를 위한 폭탄제조소 설치 등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일본을 거쳐 대만의 기융에 갔다가 체포돼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순국했다.

1994년 국내에 상륙, 현재 각광을 받고 있는 인터넷도 이같은 무정부주의 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다. 자본주의가 도래한 후 주인 없고 자본에 의해 소유되지 않은 공간은 없었으나 인터넷은 이런 공간을 제공한다.

새로운 세상을 열고 있는 인터넷은 단재와 같은 사상적인 단계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컴퓨터-컴퓨터통신-인터넷으로 이어 지는 정보통신의 발달사가 그것이다. 인터넷이 무정부주의 사상이라면 컴퓨터는 민족주의 사상이고 컴퓨터통신은 민족주의에 무정부주의가 가미된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컴퓨터는 컴퓨터통신이 도입되기전까지 민족주의처럼 독자적으로 또는 계열별로 전산업무를 처리했다. 1946년 세계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이 만들어진 이후부터 16비트 개인용컴퓨터(PC)가 나온 1980년대 초반까지로 오랜 기간이다.

컴퓨터통신은 데이터통신으로 전기통신회선에 컴퓨터의 본체와 그에 부수되는 입출력장치 및 기타의 기기(機器)를 접속하고 이에 의해 정보를 송수신 또는 처리한다. 즉, 2진수로 표시된 디지털 형태의 정보를 수집 ·가공 ·처리 ·저장 ·분배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기기들을 전기통신회선을 통해 서로 접속해 교신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기기는 주로 컴퓨터이므로 데이터 통신을‘컴퓨터 통신’이라고도 한다.

이에 따라 컴퓨터 네트워크도 가능해졌다. 컴퓨터를 통신망에 의해 상호 연결해 소프트웨어나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도록 함으로써 컴퓨터의 효율적인 이용을 목적으로 하거나, 대형 컴퓨터를 원격지에서 이용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러 가지 통신망을 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컴퓨터 네트워크의 범위는 크게 일정지역내의 통신을 위한 근거리 통신망(LAN)과 거리에 제한이 없는 원거리 통신망(WAN)으로 분류된다. WAN은 도시와 같은 넓은 지역, 국가나 대륙 같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구성하는 컴퓨터 통신망을 의미한다. 금융기관이나 대기업 또는 공공기관 등에서 구축한 통신망은 모두 광역통신망이라 할 수 있다. LAN에 대응된다.

컴퓨터통신은 컴퓨터와 인터넷시대의 중간단계로 본격적인 정보통신시대를 가져왔다. 이 시기가 국내 기준으로는 1983∼90년대 중반까지이며 단재의 2단계와 같이 민족주의에 인터넷의 무정부적인 색채가 가미됐다. 그 후 무정부주의 사상의 인터넷이 등장,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무정부주의 사상의 인터넷은 여기에 접속한 단체, 개인, 심지어 정부도 하나의 주체일뿐 어떠한 통제기능을 가질 수 없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으며 마음대로 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는 법적 규제가 없다. 어떤 규제나 누구의 소유도 허락하지 않는다. 무한한 정보와 이용의 다양성, 독창성도 인터넷만의 특징이다. 시공을 초월하는 정보통신의 특성을 살려 전자민주의도 개화되고 있다.

인터넷은 알파넷(ARPANET)에서 시작된 세계 최대 규모의 컴퓨터 통신망이다. 통신망과 통신망을 연동해 놓은 망의 집합을 의미하는 인터네트워크(internetwork)의 약어인 internet과 구별하기 위해 Internet 또는 INTERNET과 같이 고유명사로 표기한다. 랜(LAN) 등 소규모 통신망을 상호 접속하는 형태에서 점차 발전해 현재는 전세계를 망라하는 거대한 통신망의 집합체가 됐다.

인터넷에는 PC 통신처럼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심이 되는 호스트 컴퓨터도 없고 이를 관리하는 조직도 없다. 인터넷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ISOC(Internet Society)가 있지만 인터넷망을 총괄 관리하는 기구는 아니다. 그러나 인터넷을 총괄적으로 관리하지는 않지만 인터넷상의 어떤 컴퓨터 또는 통신망에 이상이 발생하더라도 통신망 전체에는 영향을 주지 않도록 실제의 관리와 접속은 세계 각지에서 분산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현재 인터넷은 전화망 버금가는 거대한 세계적 정보 기반이 되었으며 통신량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는 전자우편(e-mail), 원격 컴퓨터 연결(telnet), 파일 전송(FTP), 유즈넷 뉴스(Usenet News), 인터넷 정보 검색(Gopher), 인터넷 대화와 토론(IRC), 전자 게시판(BBS), 하이퍼텍스트 정보 열람(WWW: World Wide Web), 온라인 게임 등 다양하며 동화상이나 음성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방송하는 서비스나 비디오 회의 등 새로운 서비스가 차례로 개발돼 이용 가능하게 됐다. 이와 같은 다양한 서비스와 풍부한 정보자원 때문에 인터넷을 ‘정보의 바다’라고 한다.

기원은 1969년 미국 국방성의 지원으로 미국의 4개의 대학을 연결하기 위해 구축한 알파넷(ARPANET)이다. 처음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구축됐지만 프로토콜로 TCP/IP를 채택하면서 일반인을 위한 알파넷과 군용의 MILNET으로 분리돼 현재의 인터넷 환경의 기반을 갖추었다. 한편 미국 국립과학재단(NSF)도 TCP/IP를 사용하는 NSFNET라고 하는 새로운 통신망을 1986년에 구축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NSFNET는 전 미국 내의 5개소의 슈퍼컴퓨터 센터를 상호 접속하기 위해 구축됐는데 1987년에는 ARPANET를 대신해 인터넷의 근간망(backbone network)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인터넷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현재는 이념과 사상을 떠나 전 세계의 수많은 기업과 학교, 단체들이 인터넷에 속속 참여해 갈수록 인터넷 인구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산원의 한국 인터넷 정보 센터(KRNIC)가 IP 주소의 지정 및 도메인 등록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1994년 6월 한국통신이 최초로 인터넷 상용 서비스(KORNET)를 시작했다.

우리나라 인터넷 이용인구는 상용서비스가 개시된 이후 10년만에 3천만명을 넘어섰다. 97년 100만명, 99년에 1천만명을 돌파한 이후 2001년에 2천만명을 넘어섰고, 금년 상반기에는 마침내 3천만명을 돌파한 것이다. 인터넷 이용률(전체 인구중 인터넷이용자 비율)도 63.3%로 세계 3위다. ITU(국제전기통신연합)에 의하면 아이슬랜드가 67.5%(2003년 12월말 현재)로 1위이고 스웨덴이 63.8%로 2위다.

무정부주의적 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는 인터넷이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묶어 가고 있는 것 같이 단재의 민족주의 사상은 국수적인 자강주의의 낡은 옷을 벗고 인류공동의 국제주의적 세계관으로 민족의식을 흡수해 열려진 민족주의로 승화시켰다.

철학자 탁석산은 민족주의를 사다리에 비유,“민족주의가 세계시민주의로 올라서기 위한 사다리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 비유대로 라면 단재는 나라를 빼앗긴 절망적인 상황에서 세계시민으로 나가기 위해 한국의 민족주의라는 사다리를 최초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만든 ‘애국적 목수’다.

특히 50대 초로의 단재가 옥중에서 세계어인 에스페란토어를 새로 익히려 한 것은 그가 진실로 줏대있는 한국인인 동시에 인류애를 추구한 열려진 세계인이었음을 확인시켜준다.
<오마이뉴스 2004/09/04> ⓒ 2004 OhmyNews

Posted by 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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