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충우 X파일 75]

육필로 편지를 쓰던 시절은

아주 먼 옛날 이야기가 되었고

나이에 상관없이 사이버 바다에 빠져

메일로 사랑을 고백하고

이별도 메일로 통보한다.


갑자기 전화번호를 물어보면

숫자를 떠올리기 위해

어린아이처럼 머리를 갸우뚱거려 보지만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아 당황한다.


펜을 드는 일은

수첩에 메모를 하거나

신용카드에 싸인 할 때가 전부다.


자동차엔 내비게이션을 달고

로보트처럼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정보시대에 사는 우리는

이같이 문명이 만들어낸 디지털 치매를

자신도 모르게 앓고 있다.

정보화 농도가 짙어지면서 신종 증후군인 디지털 치매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 수가 점점 줄어들고, 가사를 보지 않으면 노래를 부르기 힘들어지는 등 과학의 발달로 인해 기억력과 계산력이 점점 떨어진다. 필자도 IT전문기자로서 20여간 디지털기기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이렇게 되었다.

다양한 디지털 기기들 속에서 누구보다 편리함을 누리며 살고 있는 오늘날의 디지털맨들이 치매라는 고질병을 겪고 있다면, 또 우리 모두 치매 환자가 될 수 있다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최근 무절제한 디지털 기기 사용으로 인한 현상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 디지털치매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치매란 대체 무엇인가? 이는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신조어 중 하나로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기억력이나 계산 능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를 뜻한다. 디지털치매라는 단어 자체는 조금 생소하지만 그 뜻은 결국, 삶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마련된 다양한 디지털 기기들에 의해 퇴화되어 가는 우리의 기억력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디지털치매는 휴대폰이나 디지털 카메라와 같은 기계들의 사용이 잦은 신세대들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들은 전화번호를 외울 필요가 없어 외우는 전화번호가 몇 개 되지 않는다. 심지어 노래방 기기 없이는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노래방 기기에서 자먹이 나오니, 노래 가사를 외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들은 우리 디지털맨들이 겪고 있는 디지털치매의 현주소를 알 수 있게 한다.

디지털치매에는 어떤 증상이 있나? 다음의증상들을 보고 자신이 해당하는 목록이 반이상이라면, 디지털치매에 해당됨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1, 친구전화번호보다 휴대폰 단축키번호가 먼저 생각난다.

2, 노래방 기기에서 나오는 가사 없이는 끝까지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몇 개 없다.

3,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는 집과 가족이 전부이다.

4, 암산한 값을 확신하지 못해 계산기로 다시 검산하곤 한다.

5, 컴퓨터에서 찾아 쓰는 용어나 한자에 익숙해 책을 읽을 때는 막막해진다.

6, 지도보다 휴대폰 자동 길 안내 장치 덕을 많이 본다.

7,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보다 휴대폰 문자메세지나 키보드 입력이 더 편하다.

인간은 주위의 모든 일에서 받는 정신적 인상을 머리속에 등록시키고 저장했다가 다시 회상시키는 뇌의 활동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이것이 바로 기억의 과정이다. 인간의 뇌는 20대를 고비로 점차 퇴행하여 나이를 먹음에 따라 뇌세포도 점차 위축된다. 한 번 파괴된 뇌세포는 다시 재생되지 않지만 다행스럽게도 인간의 뇌세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아 나이 변화에 따르는 감소로는 일상 생활에 별 지장이 없다.

이와는 달리 어떤 병적인 원인으로 뇌세포가 급격히 파괴되는 경우가 바로 치매이다. 치매는 기억에만 사소한 장애가 있는 건망증과는 달리 사고력이나 판단력도 문제가 생기고 성격까지도 변하지만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건망증의 경우는 단순한 기억장애일 뿐 다른 지적 기능 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와 같이 건망증은 뇌 신경의 퇴화라는 기질적 요인 이외에도 여러 가지 정서적,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불안증이나 우울증이 있는 경우, 심각한 스트레스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경우는 집중력의 저하로 인해 일시적인 기억 저하가 흔히 일어난다. 이 경우는 기억의 문제라기 보다는 오히려 집중력에 문제가 있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단순한 건망증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기억력이 좀 떨어진다고 '나도 이제 너무 늙었구나' 하며 비관적인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정보화가 가져온 부작용인 디지털치매도 건망증과 같이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면 극복할 수 있다. 간단히 몇 가지만 제시한다.

첫째, 집중해서 신문이나 잡지를 읽자

둘째, 컴퓨터 게임할 때 암산이나 손으로 점수를 계산하자

셋째, 손으로 쓰고 입으로 외우면서 생각하는 습관을 갖자

넷째, 일기를 쓰자

다섯째, 메일 주소나 짧은 문서는 직접 손으로 타이핑하자

여섯째, 전화는 손으로 직접 번호를 눌려 걸자


Posted by 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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