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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인터넷 싸움꾼과 검찰

한재 2008. 6. 21. 13:07

- 키보드 싸움꾼… 협박전화 부대… 도 넘은 '익명 테러'

얼마 전 다음 아고라 사이트에는 '폭력 전·의경 신상리스트'라는 게시물이 돌았다. 김모(22)씨 등 전·의경 14명의 얼굴 사진과 소속 부대, 입대 전 학교, 개인 홈페이지 주소 등이 모두 실린 글이었다. 해당 글에는 '죽여야 한다' '개념을 상실했다' 등 악성 댓글이 줄을 이었다. 신상리스트에 있던 일부 의경들이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나는 현장에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해당 인물들의 개인 홈페이지는 이내 협박과 욕설로 뒤덮였다가 폐쇄됐다. 그러나 결국 해당 인물들은 상당수가 폭력을 휘두른 적이 없거나 당사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허위 사실을 유포한 김모(34·부동산 임대업)씨는 불구속 입건됐다.

인터넷이 근거없는 주장으로 상대방에 대해 테러를 가하는 '공포의 장(場)'으로 변질되고 있다. 허위 사실을 진실인 양 인터넷에 유포시키고,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공개해 미니홈피·블로그 등 개인공간에 집단 공격을 유도한다. 욕설 등 언어폭력도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근거없는 주장+집단 공격'에 멍드는 인터넷

한 유명대학의 교수는 얼마 전 '가짜 기사'로 곤욕을 치렀다. 이 교수와 인터뷰한 것처럼 꾸민 '군복무 가산점 제도 부활은 시대 착오적 발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인터넷상에 갑자기 돈 것. 대학 홈페이지 게시판과 포털 사이트는 이 교수를 성토하는 악성 댓글로 마비되다시피 했다. 이 교수는 뒤늦게 "실제 그런 인터뷰는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소용 없었다.

A증권사도 최근 '괴담'으로 피해를 봤다. 한 네티즌이 'A증권사 면접에서 촛불집회가 불법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라는 글을 실명으로 다음 아고라에 올리자 A증권사에 비난의 댓글이 쇄도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A증권사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고, 글을 올린 사람도 해당 인물이 아닌 신원 미상의 네티즌으로 밝혀졌다.

이런 근거 없는 악성 댓글로 인한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인기가수 유니가 악성 댓글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대표적이다. 이런 악성 댓글에 대해 형법상 명예훼손·모욕죄나 정보통신망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인터넷의 익명성을 빌어 거의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상스런 욕설 등 피해 잇달아

개인 전화번호 등 신상정보가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도 문제다. 다음 아고라 등에서 일부 네티즌들은 특정인의 개인정보를 올리고 자극적인 글로 불특정 다수의 집단 공격을 유도한다.

대기업 B사의 홍보담당 A씨는 최근 다음 아고라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모골이 송연했다. 한 소비자와 방금 나눈 통화 내용이 바로 글로 올라와 있었던 것. 내용은 본지 등 특정 신문에 광고하지 말라고 전화해온 소비자에게 "기업의 정상적인 활동"이라고 답한 그대로였고, A 과장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표시돼 있었다. 밑에는 '기분 더럽다' 등 악성 댓글이 달렸다.

중견기업 C사의 홍보담당 D씨는 특정 신문에 대해 광고를 하지 말라는 소비자에게 말대꾸를 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네이버, 다음 같은 주요 포털 사이트에 전화번호와 실명이 공개된 것. D씨는 "조카뻘 되는 여학생이 'X발' 등 상스런 욕을 섞어가며 통화할 때면 힘이 좍 빠졌다"며 허탈해 했다.

◆부작용에 무력한 포털

문제는 이런 상황을 바로잡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네티즌이 익명성 뒤에 숨어서 너무나 쉽게 사이버 폭력을 행사하기 때문. 대부분의 주요 포털은 게시판 실명제를 사용하고 있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가·차명 아이디로 이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특히 다음의 경우 전화번호 인증만 받으면 한 사람이 거의 무제한으로 ID를 만들 수 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접수된 사이버폭력 관련 신고 건수는 2003년 4991건이었지만 지난해에는 1만2905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이에 비해 자정(自淨)의 움직임은 미비하다.

지난 16일 다음 아고라에는 "아고라 토론방, 닉네임이 아닌 실명사용 하도록 합시다"라는 네티즌 청원이 올라왔다. 5일이 지난 후 서명한 사람은 11명. "다음에서 이를 받아들이겠습니까? 모처럼 사람들 몰려서 문전성시 중인데…"라는 댓글은 아고라의 현실을 반영한다.

실제로 다음 측은 "인터넷에 올라오는 모든 글을 모니터링하고 삭제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할 뿐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박효수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정보화역기능대응단장은 "일부 인터넷 이용자들이 익명성이 보장된 사이버 공간을 실제 생활터전과 다른 것으로 인식해 무책임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 조선일보 2008-06-21>

- 광고주 압박 네티즌 수사…정치검찰 논란

네티즌들이 광고주를 상대로 특정 신문에 광고를 중단하라고 한 데 대해 검찰이 처벌하겠다고 나섰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20일 인터네상의 범죄 단속을 강화하라고 검찰에 특별 지시를 내린 것이다. 경향신문은 이에 대해 "'조·중·동 구하기'에 나선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2면 <법조계·학계·소비자단체 "광고주 압박 합법적 권리"> 기사에서 소비자단체·법조인·학계 등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광고주 압박운동은 소비자 주권운동의 한 형태로 봐야 한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5면 <고소고발도 없는데…시민의견 '재갈' 논란> 기사에서 "법조인들은 대체로 신문에 광고를 한 기업 이름이나 전화번호를 인터넷에 올리고 전화를 거는 정도의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금의 현상이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특정 신문들의 반응은 어떨까? 동아일보는 6면 <"광고주 협박-기업 업무방해 정도 지나쳐"> 기사에서 "법조계에서는 광고 중단 강요 행위는 그 수위에 따라 폭언이나 협박을 하지 않고 단순한 소비자의 의견 표현에 해당할 때는 형사 처벌이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면서도 "일부 누리꾼의 도를 넘은 행동은 형법상 협박이나 업무방해, 신용훼손,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등으로 형사 처벌이 가능하다는 게 검찰 일각의 시각"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6면 <키보드 싸움꾼…협박전화 부대…도 넘은 '익명 테러'> 기사에서 인터넷 공간이 "상대방에 대해 테러를 가하는 '공포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며 조선일보 등에 대한 네티즌들의 광고 압박 사례를 끼워 넣었다.

중앙일보는 20일 '신문 광고주 협박,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낸 한국신문협회(회장 장대환)의 주장을 비중 있게 실어주는 방법으로 네티즌들을 간접적으로 비난했다. 신문협회의 장대환 회장은 최근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제61차 세계신문협회(WAN) 총회에서 "한국의 전반적인 언론 상황이 개선돼 가고 있다"고 말해 현실을 왜곡 전달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출처 : 미디어오늘 2008-06-21>